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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룡이 사라진 뒤, 포유류와 우리의 먼 조상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공룡이 사라진 뒤의 지구를 떠올리면 곧바로 매머드나 원시인이 생각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수천만 년이라는 긴 시간이 놓여 있습니다. 작은 포유류들이 여러 모습으로 갈라져 나가고, 그보다 훨씬 뒤에야 우리의 먼 친척들이 두 발로 땅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공룡 옆에도 작은 포유류가 살았습니다

    약 6,600만 년 전 대멸종으로 새를 제외한 공룡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그때 처음 포유류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포유류와 그 가까운 친척들은 공룡이 살던 중생대에도 이미 지구에 있었습니다. 몸집이 작은 종류도 많았지만, 그들 역시 저마다 먹이를 구하고 새끼를 기르며 살아가던 동물들이었습니다.

    긴 꼬리와 작은 몸을 가진 중생대 포유류형 동물 모르가누코돈의 복원도
    공룡이 살던 시대의 작은 이웃, 모르가누코돈의 복원도입니다. 신생대 동물이나 실제 사진이 아니라, 뼈의 구조를 바탕으로 그린 중생대 동물의 그림입니다. 출처: FunkMonk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대멸종 뒤에는 살아남은 포유류가 이용할 수 있는 먹이와 생활 공간의 구성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땅 위를 달리는 무리, 나무를 타는 무리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이 펼쳐졌습니다. 다만 모든 포유류가 살아남거나 한꺼번에 커진 것은 아닙니다. 대멸종은 포유류에게도 큰 위기였습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의 포유류 고생물 설명

    옛날 말의 발에는 발가락이 보입니다

    신생대는 약 6,600만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시대입니다. 그 긴 변화를 살펴볼 때 말의 화석은 좋은 단서가 됩니다. 지금 말의 발끝에는 큰 발굽 하나가 눈에 띄지만, 옛 말의 친척 중에는 여러 발가락을 가진 종류도 있었습니다.

    메소히푸스는 각 발에 발가락이 세 개 있던 말과 동물입니다. 사진에서 다리 끝의 뼈를 살펴보면 지금의 말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뼈 하나하나는 동물이 몸을 어떻게 지탱했는지 알려주는 작은 기록입니다. 자료: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의 메소히푸스 설명

    메소히푸스의 두개골과 전체 골격, 세 발가락이 보이는 앞발 골격 전시
    메소히푸스의 골격을 본뜬 전시물입니다. 맨 오른쪽의 발뼈를 보면 세 발가락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H. Zell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말의 역사를 작은 동물이 점점 커져 오늘의 말이 되는 한 줄짜리 이야기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 계통이 갈라졌고, 뒤에 등장했어도 몸집이 작은 종류나 세 발가락을 유지한 종류가 있었습니다. 진화는 정해진 완성품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보다, 여러 방향으로 뻗는 나뭇가지에 가깝습니다. 자료: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말 진화 전시

    우리의 먼 친척도 나뭇가지처럼 갈라졌습니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의 침팬지가 어느 날 사람으로 바뀐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침팬지는 먼 과거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서로 다른 계통입니다. 또 옛 인류가 한 종류씩 차례대로 등장해 앞선 종류를 모두 대신한 것도 아닙니다. 여러 종류가 같은 시대에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 인류 진화 문답

    그 긴 역사에서 잘 알려진 화석이 ‘루시’입니다. 약 320만 년 전 지금의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한 개체입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뼈를 보면 무엇을 알아냈는지 이해하기가 조금 쉬워집니다.

    박물관에 세워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의 골격 복원 전시
    루시의 뼈를 바탕으로 몸 전체의 모습을 복원한 박물관 전시입니다. 원래 발견된 뼈가 온전한 전신 골격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출처: Andrew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짧고 넓은 골반과 안쪽으로 기울어진 넓적다리뼈는 두 발로 걷는 몸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팔과 손발에는 나무 타기와 관련된 특징도 남아 있었습니다. 땅에서 걷기와 나무에서 생활하기가 함께 어우러진 몸이었던 셈입니다. 두 발로 걷기, 큰 뇌, 오늘날과 같은 몸이 어느 날 한꺼번에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의 루시 화석 설명

    발자국에는 걸음걸이도 남아 있습니다

    뼈만 옛 생활을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탄자니아 라에톨리에는 약 366만 년 전 화산재 위에 남은 발자국 길이 있습니다. 누군가 지나간 뒤에 흔적이 보존되어, 그때의 걸음을 오늘날까지 전해 주는 것입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의 라에톨리 발자국 설명

    현대인의 두 가지 걸음으로 만든 발자국과 라에톨리 발자국의 깊이를 비교한 연구 그림
    A는 현대인의 보통 걸음, B는 무릎과 엉덩이를 굽힌 걸음으로 만든 실험 발자국입니다. C가 라에톨리 발자국의 측정 자료입니다. 색과 선은 발자국의 깊이를 나타내며, 현장 사진이 아닌 연구용 비교 그림입니다. 출처: Raichlen·Gordon·Harcourt-Smith·Foster·Haas / Wikimedia Commons, CC BY 2.5.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발뒤꿈치와 발가락이 눌린 깊이 등을 현대인의 실험 발자국과 비교했습니다. 2010년 연구는 라에톨리 발자국에서 사람과 비슷한 두 발 걷기의 특징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발자국만 보고 그 주인의 얼굴이나 모든 생활 모습을 알 수는 없습니다. 남은 흔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상상해야 하는 부분을 나누어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자료: Raichlen 외, 2010년 발자국 연구

    더 먼 곳으로 걸어간 초기 인류

    시간을 더 지나 약 190만 년 전 무렵으로 가면 호모 에렉투스가 화석 기록에 나타납니다. 이들은 앞선 인류보다 몸통에 비해 다리가 길고 팔이 짧아, 땅 위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 어울리는 몸의 비율을 보입니다.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지역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호모 에렉투스 두개골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 전시 사진입니다. 박물관의 두개골 자료는 초기 인류의 머리뼈 모양을 비교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출처: Tiia Monto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가 살던 오랜 기간에는 돌을 다듬는 기술도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같은 도구를 쓰고 같은 생활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넓은 지역에 오랫동안 살았던 만큼, 남아 있는 유적도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종을 어디까지 나누어 부를지에 대해서도 연구자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의 호모 에렉투스 설명

    작은 포유류의 턱뼈, 세 발가락을 가진 옛 말의 발, 루시의 골반, 화산재 위의 발자국은 서로 다른 시간의 기록입니다. 이들을 차례로 살펴보면 공룡의 멸종과 사람의 등장이 바로 이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천만 년 동안 갈라지고 사라지고 살아남은 생명들의 역사 속에, 두 발로 걸었던 우리의 먼 친척들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 대멸종 뒤 지구에는 누가 살았을까요? 트라이아스기의 낯선 이웃들

    공룡 시대라고 하면 커다란 공룡들이 땅을 가득 메운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공룡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풍경은 조금 달랐습니다. 물가에는 넓적한 머리를 가진 양서류가 있었고, 땅에서는 악어의 친척과 포유류 쪽 친척들이 함께 살아갔습니다. 오늘은 대멸종 이후의 지구, 트라이아스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레인보 포리스트 박물관에 전시된 트라이아스기 동물 골격 모형들
    공룡만 살았던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트라이아스기 동물들을 소개하는 박물관 전시입니다. 사진: NPS / Hallie Larsen. 출처

    지구의 달력이 새 장으로 넘어갔습니다

    약 2억 5,200만 년 전, 페름기 말 대멸종을 지나 트라이아스기가 시작됐습니다. 트라이아스기는 약 2억 100만 년 전까지 이어지는 중생대의 첫 시기입니다. 달력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지구가 하루아침에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살아남은 생물들이 번식하고, 먹고 먹히는 관계가 다시 이어지면서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텅 빈 운동장에 아이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장면보다는, 비가 그친 뒤 풀밭 곳곳에서 작은 움직임이 돌아오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생태계의 회복 속도는 장소와 생물 무리에 따라 달랐습니다. 바다와 육지가 언제나 같은 박자로 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가에는 커다란 양서류가 있었습니다

    트라이아스기의 물가를 만난다면 먼저 물속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싶습니다. 메토포사우루스류처럼 머리가 넓고 납작한 커다란 양서류가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름 끝에 ‘사우루스’가 붙어도 모두 공룡은 아닙니다. 동물을 구분할 때는 이름보다 몸의 구조와 진화적 관계를 살펴봐야 합니다.

    머리가 넓적한 트라이아스기 양서류 메토포사우루스류의 복원 그림
    오늘날의 작은 도롱뇽만 생각하면 놀라게 될 모습입니다. 메토포사우루스류의 복원 그림이며, 살아 있을 때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 그림: NPS. 출처

    악어의 친척은 땅에서도 바빴습니다

    악어라고 하면 물 위로 눈과 콧구멍만 내놓은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트라이아스기의 악어 쪽 친척들은 몸의 형태와 생활 방식이 훨씬 다양했습니다. 헤스페로수쿠스처럼 다리가 길고 육지에서 움직이던 작은 포식자도 있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동물만으로 먼 옛날의 친척들까지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리가 길고 날씬한 악어 쪽 친척 헤스페로수쿠스의 복원 그림
    악어의 친척 중에는 이렇게 육지 생활에 어울리는 몸을 가진 동물도 있었습니다. 헤스페로수쿠스 복원 그림: NPS / Jeff Martz. 출처

    공룡으로 확실하게 분류되는 초기 화석은 약 2억 3,300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 후기 지층에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발견한 가장 오래된 화석이 곧 최초의 공룡 개체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책의 첫 장이 사라졌다면 남아 있는 가장 앞 페이지를 책의 시작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늘의 익룡도 공룡과는 달랐습니다

    트라이아스기에는 익룡도 등장했습니다. 익룡은 공룡과 가까운 친척이지만 공룡 자체는 아닙니다. 아주 길어진 손가락이 날개막을 받치는 구조를 가졌습니다. 박물관의 골격을 볼 때 날개 끝에서 몸 쪽으로 눈길을 따라가면, 날개를 지탱한 뼈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레인보 포리스트 박물관에 전시된 익룡 골격
    익룡의 날개는 어떤 뼈가 받치고 있었을까요? 레인보 포리스트 박물관의 골격 전시 사진입니다. 사진: NPS. 출처

    우리와 가까운 쪽의 친척도 살아갔습니다

    튼튼한 몸에 아래로 뻗은 엄니가 있는 플라케리아스도 만나 보겠습니다. 이 동물은 공룡이 아니라 포유류로 이어지는 계통 쪽의 먼 친척입니다. 같은 트라이아스기를 살았다고 모두 공룡 가족인 것은 아닙니다. 생김새가 낯설수록 ‘누구와 더 가까운 친척일까?’ 하고 묻는 편이 지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네 발로 서 있고 얼굴 옆에 엄니가 있는 플라케리아스 복원 그림
    플라케리아스는 식물을 먹던 동물입니다. 공룡과는 다른 계통에 속합니다. 복원 그림: NPS / Jeff Martz. 출처

    이 다섯 장면은 트라이아스기의 모든 시기와 장소를 한꺼번에 촬영한 풍경이 아닙니다. 수천만 년 동안 여러 지역에 살았던 동물들을 사진과 복원 그림으로 모아 살펴본 것입니다. 몸의 색이나 살의 모양처럼 화석만으로 정확히 알기 어려운 부분에는 복원자의 해석이 들어갑니다.

    공룡이 등장한 지구를 바라볼 때 이제는 주변도 함께 보게 됩니다. 물가의 양서류, 땅을 걷던 악어의 친척, 하늘의 익룡, 포유류 쪽 친척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갔습니다. 트라이아스기의 흥미로운 점은 거대한 공룡 한 마리보다도, 이렇게 서로 다른 생명들이 함께 채워 간 풍경에 있습니다.

    함께 확인한 자료

  • 등에 돛을 단 디메트로돈은 공룡이었을까요?

    등에 커다란 돛을 달고, 긴 꼬리를 늘어뜨린 동물이 있습니다. 이름은 디메트로돈입니다. 날카로운 이빨까지 보면 공룡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동물은 공룡이 등장하기 훨씬 전, 페름기 전기에 살았던 동물입니다.

    페름기 강가에 서 있는 돛 달린 디메트로돈을 그린 AI 상상도
    AI로 제작한 상상도입니다. 몸 색깔과 조명, 주변 풍경은 시각적 연출이며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사진이 아닙니다.

    디메트로돈을 알아보는 데에는 등의 돛만큼이나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생명의 가계도에서 어느 가지에 놓이는가 하는 점입니다. 낯선 옛 동물을 살펴보다 보면 우리 포유류와도 이어지는 관계를 만나게 됩니다.

    공룡보다 먼저 땅 위를 걸었습니다

    디메트로돈의 이른 종류는 거의 3억 년 전 지구에서 살았습니다. 공룡과 나란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서로 살았던 시기부터 다릅니다. 오래전에 멸종했고 몸집이 컸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동물이 공룡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화석을 보면 긴 꼬리와 네 다리, 등 위로 유난히 길게 솟은 뼈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된 골격은 그 뼈들을 비교하며 몸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줍니다. 다만 전시 자세가 살아 있을 때의 모든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 카를스루에 자연사박물관의 디메트로돈 전시 골격 옆모습
    돛 아래에는 이렇게 길게 솟은 뼈가 있습니다. 독일 카를스루에 자연사박물관의 전시 골격입니다. 사진: H. Zell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표시 크기를 줄였습니다.

    생명의 가계도에서는 우리 쪽 가지에 있습니다

    디메트로돈이 속하는 큰 무리를 ‘단궁류’라고 부릅니다. 처음 들으면 어려운 말이지만, 지금 살아 있는 포유류와 그 옛 친척들을 함께 묶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람과 고양이도 이 큰 무리에 들어갑니다.

    공룡은 파충류 쪽 가지에 있습니다. 디메트로돈은 공룡보다 포유류와 더 가까운 친척인 셈입니다. 겉모습이 도마뱀처럼 보이더라도, 몸의 여러 특징과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관계를 함께 살펴보면 다른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공통 조상에서 단궁류와 파충류가 갈라지고 단궁류 안에서 디메트로돈과 포유류가 서로 다른 가지에 놓인 단순화한 그림
    디메트로돈과 포유류의 관계를 단순하게 그렸습니다. 많은 가지를 생략했으며 시간이나 진화 속도를 나타내는 그림은 아닙니다. 제작: 코스모스파일. 참고: Angielczyk, 2009.

    그렇다고 디메트로돈이 차례차례 변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무의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듯, 단궁류 안에서도 많은 무리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디메트로돈은 우리의 곧바로 윗세대 조상이라기보다, 아주 먼 옛 친척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고생물학자 Angielczyk의 설명도 이런 가지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큰 이빨과 작은 이빨이 함께 있었습니다

    디메트로돈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크기의 이빨’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입 안에 크고 작은 이빨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먹이를 붙잡고 살을 찢는 데 알맞은 이빨을 지닌 육식동물이었습니다.

    미국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디메트로돈의 두개골과 긴 등뼈 돌기
    두개골과 이빨도 디메트로돈의 생활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입니다. 미국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전시 골격입니다. 사진: Jeff Kubina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원본 파일에 추가 편집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디메트로돈이라도 종류에 따라 몸집이 달랐습니다. 작은 종류와 큰 종류를 한 가지 크기로 생각하면 실제 다양성을 놓치기 쉽습니다. 화석의 턱과 이빨, 뼈의 크기를 비교하는 일은 이런 차이를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름과 몸의 특징은 하버드 자연사박물관 자료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등의 돛은 무엇을 하는 데 썼을까요?

    디메트로돈의 돛은 등뼈에서 위로 길게 뻗은 돌기들이 받치는 구조였습니다. 부채의 가느다란 살을 떠올리면 모양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다만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처럼 움직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전부터 잘 알려진 설명은 체온 조절입니다. 넓은 돛으로 햇빛의 열을 받거나 열을 내보내는 데 도움을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돛을 보고 곧바로 ‘몸을 데우는 난방판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녁 햇빛 아래 디메트로돈 등의 돛을 강조한 AI 상상도
    AI로 제작한 상상도입니다. 돛의 색깔과 빛 표현은 상상한 것이며, 돛의 기능을 입증하는 장면은 아닙니다.

    몸 크기에 비해 돛이 얼마나 커지는지 비교한 2010년 연구는, 짝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과시 기능과 들어맞는 양상을 보고했습니다. 같은 해 뼈 조직을 살핀 연구 역시 돛의 구조를 자세히 검토했습니다. 이렇게 연구 방법이 달라지면 겉모습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단서가 더해집니다. 돛의 크기와 과시 기능 연구 · 등뼈 돌기의 조직 연구

    그래서 돛의 역할은 여러 설명과 근거를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림 속의 선명한 무늬와 색깔도 화석으로 확인된 모습은 아닙니다. 상상도는 옛 생물을 가까이 느끼게 해주지만, 뼈가 알려주는 사실과 상상으로 채운 부분은 구별해야 합니다.

    디메트로돈의 큰 돛은 멀리서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이 동물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 아래에 남은 뼈와 이빨, 그리고 생명의 가계도 속 자리입니다. 공룡처럼 보였던 동물에게서 포유류의 아주 먼 친척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 참 신기합니다.

  • 잠자리처럼 생긴 곤충이 어떻게 이렇게 컸을까요? 석탄기의 메가네우라

    여름에 만나는 잠자리는 가느다란 몸과 투명한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날아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주 먼 옛날에는 잠자리를 닮았으면서 날개를 펼친 폭이 약 70cm에 이르는 곤충이 살았습니다. 30cm 자 두 개를 나란히 놓고도 조금 더 보태야 하는 길이입니다.

    그 주인공이 메가네우라입니다. 약 3억 년 전, 석탄기 후기의 곤충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상상 속 동물처럼 느껴지지만, 바위에 남은 날개의 흔적이 실제로 살았던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MUSE 과학박물관에 전시된 메가네우라 모니이 실물 크기 복원 모형
    메가네우라 모니이의 실물 크기 복원 모형입니다. 살아 있는 곤충을 찍은 사진이 아니며, 몸의 색과 자세까지 화석으로 확인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출처: Matteo De Stefano/MUSE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이 글에서는 원본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70cm는 몸길이가 아니라 날개를 펼친 폭입니다

    큰 곤충을 소개하는 글에서 숫자만 보면 몸통이 70cm나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크기는 왼쪽 날개 끝에서 오른쪽 날개 끝까지의 폭입니다. 몸길이와 날개 폭은 구분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은 프랑스 코망트리에서 발견된 메가네우라 모니이를 소개하며 날개 폭을 70cm로 안내합니다. 같은 자료에는 석탄기 후기, 약 3억 년 전이라는 시대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의 표본 안내를 보면 이 이야기가 어떤 화석에서 시작됐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리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메가네우라 모니이 화석 표본
    메가네우라 모니이의 화석입니다. 바위에 남은 날개를 통해 오래전 곤충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Ghedo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이 글에서는 원본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메가네우라는 흔히 거대 잠자리라고 불립니다. 다만 오늘날 잠자리와 완전히 같은 동물을 크기만 키워 놓은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잠자리를 닮은 멸종 곤충 무리에 속하며, 날개의 구조 같은 특징으로 구분합니다.

    몸속으로 공기를 보내는 길이 있습니다

    이렇게 큰 곤충이 어떻게 숨을 쉬고 날아다녔을까요? 곤충의 몸에는 공기가 드나드는 작은 구멍이 있고, 그 안쪽으로 기관이라는 가느다란 공기 통로가 뻗어 있습니다. 사람처럼 폐로 들어온 산소를 피가 온몸에 나르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작은 방에 공기를 보내는 일과 넓은 건물 구석구석까지 보내는 일은 조건이 다릅니다. 곤충도 몸이 커지면 산소를 필요한 조직까지 보내는 구조가 중요해집니다. 다만 기관은 그저 가만히 놓인 빨대만은 아닙니다. 몸의 움직임과 공기주머니 등도 공기 이동을 도울 수 있습니다.

    메가네우라 모니이의 날개 화석과 촘촘한 날개맥
    날개에 남은 가느다란 선을 날개맥이라고 합니다. 곤충의 무리를 구분하는 단서이며, 사진에 보이는 선이 호흡기관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출처: Ghedo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이 글에서는 원본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2007년 연구에서는 딱정벌레의 몸 크기와 기관 구조를 엑스선 영상으로 비교했습니다. 연구진은 큰 종에서 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특히 다리로 이어지는 공간이 제한 요인이 될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과거에 산소가 더 풍부했다면 이런 공간의 부담을 덜어 큰 몸이 진화하는 데 도움이 됐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딱정벌레 기관 구조 연구에서 검토한 가설입니다.

    산소가 많았다는 설명만으로 충분할까요?

    석탄기 후기부터 페름기 초기에는 지금보다 산소가 풍부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옛 공기를 직접 측정한 값은 아니며, 지질 기록과 지구의 물질 순환을 계산한 모형 등을 바탕으로 알아냅니다. 시대 전체에 산소 농도가 한결같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산소와 곤충 크기의 관계를 검토한 2012년 연구는 곤충 화석의 날개 크기 자료를 오랜 시간에 걸쳐 비교했습니다. 옛 시기에는 최대 크기와 산소 수준이 함께 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그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연구진은 새처럼 날아다니는 포식자의 등장과 발달도 큰 곤충의 크기를 제한했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Clapham과 Karr의 연구입니다.

    메가네우라 브롱니아르티의 박물관 화석 표본 MNHN R51125
    메가네우라 브롱니아르티로 등록된 화석 표본입니다. 앞서 본 모니이와 다른 이름으로 분류된 표본이며, 사진 속 모든 메가네우라가 똑같은 크기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출처: Gaëlle DOITTEAU / Wikimedia Commons, CC BY 4.0. 이 글에서는 원본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현생 곤충의 실험도 단순한 답만 주지는 않습니다. 2014년에는 크기가 서로 다른 잠자리 11종의 비행과 산소 조건을 비교했습니다. 이 실험에서는 큰 종일수록 산소 부족에 더 민감하다는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는 곤충도 자신의 몸에 맞게 산소 공급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Henry와 Harrison의 비행 실험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소가 많으면 모든 곤충이 거대해집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몸의 구조와 성장 과정, 먹이를 구하고 포식자를 피하는 조건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오늘날의 작은 곤충에게 산소만 더 공급하면 메가네우라가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바위에 남은 날개가 알려 주는 것

    메가네우라 아에로플라나의 화석 표본 MNHN R53004
    메가네우라 아에로플라나로 등록된 화석 표본입니다. 서로 다른 표본을 비교하면 한 장의 복원 모형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차이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Gaëlle DOITTEAU & Olivier BETHOUX / Wikimedia Commons, CC BY 4.0. 이 글에서는 원본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화석에서는 날개의 모양과 크기처럼 직접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면 몸의 색이나 실제 비행 자세, 그 곤충이 거대해진 정확한 이유는 같은 수준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박물관의 복원 모형이 이해를 도와주더라도 화석과 상상으로 채운 부분을 구분하는 이유입니다.

    70cm라는 숫자는 분명 놀랍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얇은 날개의 흔적이 수억 년을 지나 지금까지 전해졌다는 점입니다. 바위에 남은 선 몇 줄 덕분에 우리는 지금과 다른 공기와 생명들이 있던 지구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 검은 석탄 속에는 어떻게 옛 숲이 들어갔을까요?

    검은 석탄 한 조각을 보고 초록빛 숲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손에 묻어나는 검은 가루와 단단한 표면에서는 나뭇잎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돌의 출발점에는 오래전 땅 위에서 자라던 식물들이 있습니다.

    잎과 줄기, 나무껍질 같은 식물의 몸이 쌓이고 땅속에 묻히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것입니다. 숲이 어느 날 갑자기 검은 돌로 굳은 것은 아닙니다. 석탄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식물이 자라는 일 외에도 여러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검은빛의 역청탄입니다. 식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출발점은 오래전 쌓인 식물 잔해입니다.
    검은빛의 역청탄입니다. 식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출발점은 오래전 쌓인 식물 잔해입니다. 출처: Amcyrus2012. CC BY 4.0. 원본 변경 없음.

    나무가 쓰러진다고 모두 석탄이 되지는 않습니다

    숲 바닥에 떨어진 잎을 떠올려 보세요. 시간이 지나면 잘게 부서지고, 미생물과 여러 생물의 활동으로 분해됩니다. 식물의 몸을 이루던 물질도 주변 환경으로 돌아갑니다. 나무가 많이 자란 자리라고 해서 그 아래에 반드시 석탄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물이 고인 습지에서는 사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에 잠긴 땅속으로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식물 잔해가 분해되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분해되어 사라지는 양보다 쌓이는 양이 많아지면, 식물 조각이 섞인 이탄층이 두꺼워질 수 있습니다. 이탄은 석탄으로 가는 출발 재료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땅속에 묻힌 뒤에도 변화는 계속됩니다

    이탄 위로 모래와 진흙 같은 퇴적물이 쌓이면 식물 잔해가 땅속에 묻힙니다. 위에서 누르는 무게로 층이 눌리고 물이 빠져나가며, 땅속의 열을 받으면서 성분도 달라집니다. 이 과정을 석탄화라고 부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래 기다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얼마나 깊이 묻혔는지, 어떤 온도를 겪었는지 등도 석탄의 성질에 영향을 줍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묻힘에 따른 압축과 열의 작용으로 이탄이 석탄으로 변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USGS 석탄 형성 자료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포인트 아코니에서 드러난 석탄층입니다. 주변 암석 사이에 검은 띠처럼 이어집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포인트 아코니에서 드러난 석탄층입니다. 주변 암석 사이에 검은 띠처럼 이어집니다. 출처: Michael C. Rygel via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원본 변경 없음.

    사진 속 검은 띠가 바로 석탄층입니다. 그 위아래의 암석까지 함께 보면 식물 잔해만 쌓인 시간이 아니라, 모래와 진흙이 들어와 그 자리를 덮은 시간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절벽에 드러난 한 줄의 층에는 이런 변화가 겹쳐 있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의 석탄 등급 그림입니다. 갈탄(lignite), 아역청탄(subbituminous), 역청탄(bituminous), 무연탄(anthracite)을 비교합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의 석탄 등급 그림입니다. 갈탄(lignite), 아역청탄(subbituminous), 역청탄(bituminous), 무연탄(anthracite)을 비교합니다. 출처: Stanley P. Schweinfurth / USGS. 미국 연방정부 자료, 퍼블릭 도메인. 원본 변경 없음.

    석탄에는 갈탄, 아역청탄, 역청탄, 무연탄처럼 여러 등급이 있습니다. 대체로 석탄화가 진행될수록 수분과 휘발성 성분이 줄고 탄소의 비율이 달라집니다. 다만 모든 석탄이 지금도 똑같은 속도로 다음 등급을 향해 변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각 석탄층이 겪은 땅속 환경이 중요합니다.

    석탄기의 숲은 지금의 숲과 달랐습니다

    석탄기라는 이름에는 석탄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풍부한 석탄층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그렇다고 당시 지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늪지 숲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식물이 잘 자라고 그 잔해가 쌓이고 묻히기 좋은 지역에서 석탄의 재료가 보존됐습니다.

    그런 습지에는 인목처럼 커다랗게 자라는 석송류 등 여러 식물이 살았습니다. 오늘날의 소나무 숲이나 참나무 숲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식물의 줄기와 잎, 땅속 기관 화석은 당시 숲을 알아보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미시간대학교 화석 자료에서도 인목과 스티그마리아를 석탄기 습지 식물의 흔적으로 소개합니다.

    석탄기 식물의 땅속 기관인 스티그마리아 화석입니다. 동그란 흔적이 남은 표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석탄기 식물의 땅속 기관인 스티그마리아 화석입니다. 동그란 흔적이 남은 표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IvanSakhno. CC BY 4.0. 원본 변경 없음.

    스티그마리아 표면의 동그란 자국들은 땅속에서 뻗었던 작은 뿌리 모양 기관들이 붙어 있던 흔적입니다. 잎이 떨어진 자리나 땅속 기관의 자국처럼 작은 특징이 남아 있어서, 식물이 이미 사라진 뒤에도 몸의 구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검은 돌에 남은 것은 숲만이 아닙니다

    무연탄의 모습입니다. 석탄은 묻힌 뒤 받은 열과 변화의 정도에 따라 성질이 달라집니다.
    무연탄의 모습입니다. 석탄은 묻힌 뒤 받은 열과 변화의 정도에 따라 성질이 달라집니다. 출처: USGS · Minerals in Your World. 미국 연방정부 자료, 퍼블릭 도메인. 원본 변경 없음.

    모든 석탄이 석탄기에 생긴 것도 아닙니다. 지구의 다른 시대에도 식물 잔해가 보존되고 묻혀 석탄이 만들어졌습니다. 석탄이라는 이름만으로 나이를 정할 수는 없고, 주변 지층과 화석 같은 증거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석탄 한 조각에는 식물이 햇빛을 받으며 자란 시간, 물이 고인 자리에서 잔해가 쌓인 시간, 땅속에 묻혀 열을 받은 시간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겉으로는 작은 검은 돌이지만, 그 안에는 숲과 물과 땅이 함께 만든 긴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 물고기가 번성하던 바다에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데본기 후기의 대멸종

    데본기를 떠올리면 갑옷을 두른 물고기와 커다란 나무가 먼저 생각납니다. 물속에서는 여러 물고기가 살아가고, 육지에는 숲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이 다양해지던 이 시대의 뒤쪽에는 바다 생태계를 크게 바꾼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물고기뿐 아니라 바닷바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호와 해면 같은 동물들이 쌓아 올린 구조물은 여러 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었습니다. 그 터전이 무너지면, 그곳을 이용하던 생명들의 삶도 함께 달라집니다.

    호주 윈드자나 협곡에 드러난 데본기 암초 기원의 석회암 절벽
    지금은 육지에 드러난 윈드자나 협곡입니다. 이곳의 석회암 지형은 데본기의 오래된 암초에서 비롯됐습니다. 멸종 당시의 장면을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 출처: Naturlinareginea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원본 변경 없음.

    한날에 끝난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데본기 후기의 대멸종을 하나의 날짜에 일어난 사고처럼 생각하면 이야기가 꼬이기 쉽습니다. 약 3억 7천2백만 년 전의 켈바서 사건과, 약 3억 5천9백만 년 전 데본기가 끝날 무렵의 한겐베르크 사건을 구분해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두 사건 사이에는 천만 년이 넘는 시간이 있습니다.

    켈바서 사건 자체도 지층에서는 두 차례의 중요한 위기로 나타납니다. 오늘 저녁까지 멀쩡하던 바다가 다음 날 아침 한꺼번에 사라진 식의 모습은 아닙니다. 어느 시기의 어떤 생물 무리를 보는지에 따라 피해의 양상도 달랐습니다.

    오하이오 데본기 석회암에서 나온 스트로마토포로이드 화석의 윗면
    데본기 바다의 해면류인 스트로마토포로이드의 화석입니다. 이들은 당시 암초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진 속 표본이 멸종 순간을 보존한 것은 아닙니다. 출처: Mark A. Wilson(Wilson44691) /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원본 변경 없음.

    물은 있어도 숨 쉬기 어려운 바다가 됩니다

    바다 동물에게는 물에 녹아 있는 산소가 필요합니다. 물이 눈앞에 가득하더라도 그 안의 산소가 부족하면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데본기 후기의 위기를 연구할 때 바닷물의 산소 부족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연구자들은 오래된 퇴적암에 남은 탄소와 황, 금속 원소의 흔적을 분석해 당시 바다의 상태를 추정합니다. 켈바서 사건 무렵의 어두운 지층도 중요한 단서입니다. 다만 돌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바다가 산소를 잃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지층이 쌓인 환경과 여러 화학 지표를 함께 봐야 합니다.

    독일 켈바서 사건과 관련된 검은 지층의 근접 사진
    켈바서 사건과 관련된 독일의 어두운 지층입니다. 바위의 색과 층, 그 안의 화학 성분을 함께 살펴보며 옛 바다를 알아봅니다. 출처: Nosmisiso / Wikimedia Commons, 저작권자의 상업적 이용·재배포 허용. 원본 변경 없음.

    2023년 북아메리카 바켄 셰일 연구는 90개의 시추 코어 자료를 모아, 산소가 없고 황화수소가 존재하는 물이 얕은 바다로 단계적으로 퍼진 흔적을 분석했습니다. 황화수소의 독성까지 더해지면 동물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환경이 됩니다. 이 결과는 특정 분지의 상세한 기록이며, 지구의 모든 바다가 똑같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육지의 숲도 바다와 이어져 있었습니다

    뜻밖에도 육지 식물의 확장이 바다의 위기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뿌리와 토양이 발달하면서 암석 속 영양분이 풀려나고, 그 일부가 강을 따라 바다로 들어갔다는 설명입니다.

    영양분이 많아지면 플랑크톤이 크게 늘 수 있습니다. 이후 죽은 생물의 유기물을 미생물이 분해하는 과정에서 물속 산소가 소비됩니다. 먹이가 될 영양분이 많아지는 일이, 조건에 따라서는 산소 부족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셈입니다.

    2023년 지구 시스템 모형 연구는 육지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인의 증가가 넓은 해역의 산소 부족을 만들 수 있는지 계산했습니다. 결과는 이 연결이 가능함을 보여줬지만, 숲 하나만을 멸종의 원인으로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화산 활동도 함께 검토했으며, 여러 요인이 겹쳤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오하이오 데본기 석회암 속 벌집 모양 군체 산호 화석
    작은 방들이 모여 있는 듯한 데본기 군체 산호의 흔적입니다. 살아 있을 때에는 각각의 작은 산호 동물이 함께 군체를 이뤘습니다. 켈바서 사건보다 앞선 데본기 중기 표본입니다. 출처: James St. John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원본 변경 없음.

    2024년 독일 지층 연구도 기후와 육지의 풍화, 바다로 흘러드는 물질을 함께 살폈습니다. 연구진은 육지에서 온 영양분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여전히 불확실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바닷물의 순환과 기후 변화, 화산 활동이 어떤 순서와 크기로 겹쳤는지는 더 맞춰 봐야 할 부분입니다.

    사라진 생명 뒤에는 달라진 바다가 남았습니다

    산호와 해면이 만드는 암초는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닙니다. 작은 생물이 붙어 살고, 먹이를 구하고, 몸을 숨길 공간이 생기는 살아 있는 터전입니다. 암초 생태계가 큰 타격을 받았다는 말에는 그 안의 여러 관계도 흔들렸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모스크바층의 데본기 완족동물 화석들이 모여 있는 표본
    데본기 중기 완족동물 화석이 모여 있는 모습입니다. 화석이 풍부한 바위를 보면 당시 바다에 살던 여러 생명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표본을 대멸종의 집단 폐사 현장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출처: RealGatba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원본 변경 없음.

    물고기들의 변화도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0년 척추동물 화석 자료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한겐베르크 사건을 전후로 바다와 민물의 척추동물 무리가 크게 재편된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켈바서 사건과 한겐베르크 사건을 한데 섞으면, 어떤 생명들이 언제 큰 피해를 받았는지 놓치기 쉽습니다.

    데본기의 위기를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큰 물고기만큼 바닷바닥에 붙어 살던 작은 동물들도 마음에 남습니다. 살아갈 물은 있었지만, 그 물이 더는 몸을 지탱해 주지 못하는 환경이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화석은 생명의 모양뿐 아니라, 생명이 계속 살아가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도 돌아보게 합니다.

    참고한 자료
    Sahoo 외(2023), 바켄 분지의 산소 부족·황화수소 환경 연구
    Smart 외(2023), 육지 식물 확장과 바다의 산소 부족을 검토한 모형 연구
    켈바서 위기 전후의 기후·탄소 순환 연구(2024)
    Sallan·Coates(2010), 데본기 말 멸종과 척추동물 무리의 변화
    서호주 환경보전기관, 윈드자나 협곡 등의 지질 안내

  • 지구에는 언제 숲이 생겼을까요? 작은 줄기에서 커다란 나무로

    숲길을 걸을 때면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발밑의 낙엽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서, 지구에도 숲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육지에 자리 잡은 작은 식물들이 처음부터 커다란 나무였던 것은 아닙니다. 낮은 줄기들이 자라던 땅에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식물들이 나타나고, 나무가 모여 자라는 숲이 생기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때가 데본기입니다.

    길보아에서 발견된 에오스페르마토프테리스 줄기 화석의 박물관 전시 사진
    오래된 숲이 남긴 줄기 흔적입니다. 원래의 나무가 그대로 남은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있던 공간을 퇴적물이 채워 굳은 화석입니다. 출처: James St. John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원본 변경 없음.

    오래된 숲은 바위 속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2024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영국 서머싯과 데번 해안의 약 3억 9천만 년 전 지층에서 오래된 숲의 흔적을 보고했습니다. 칼라모피톤이라는 식물의 줄기와 가지 조각뿐 아니라, 나무가 서 있던 자리와 뿌리 흔적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연구 논문에서는 이를 당시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화석 숲의 증거로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무 화석 하나의 나이만이 아닙니다. 나무들이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함께 자랐는지, 주변에 어떤 흙과 모래가 쌓였는지도 숲을 알아보는 단서가 됩니다. 나무 한 그루의 사진과 숲 전체의 풍경이 서로 다른 정보를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칼라모피톤은 멀리서 보면 야자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야자나무는 아니었고, 오늘날 나무에서 흔히 보는 넓은 잎 대신 가느다란 가지 구조를 지녔습니다. 겉모습이 비슷하다고 같은 종류의 식물은 아닌 셈입니다.

    가느다란 줄기 위로 가지가 모여 난 칼라모피톤 복원 그림
    칼라모피톤의 모습을 화석을 바탕으로 그린 복원도입니다. 실제 사진이나 AI 생성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가 그린 상상 복원 그림입니다. 색과 자세까지 화석으로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출처: Falconaumanni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원본 변경 없음.

    그루터기와 가지를 이어 보니 나무가 보였습니다

    미국 뉴욕주의 길보아에서도 오래전부터 나무 밑동 화석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밑동만으로는 꼭대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손잡이만 보고 물건 전체의 모양을 짐작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2007년 연구에서는 와티에자라는 식물의 가지 부분이 에오스페르마토프테리스라고 불리던 줄기와 밑동에 연결된 화석을 보고했습니다. 덕분에 적어도 8미터 높이로 자라는 나무 같은 식물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밑동과 가지가 따로 발견될 때보다 훨씬 구체적인 그림이 나온 것입니다. 연결된 화석을 분석한 연구가 오래된 숲의 모습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잎이 펼쳐지고, 땅속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데본기의 숲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식물이 아르카이오프테리스입니다. 가지에 붙은 잎은 얼핏 고사리처럼 보이지만, 오늘날의 고사리와 같은 식물은 아닙니다. 단단한 목질부를 만드는 줄기와 잎, 포자로 번식하는 특징을 함께 지녔습니다.

    바위에 가지런히 남은 아르카이오프테리스의 잎과 가지 화석
    아르카이오프테리스의 잎 달린 가지 일부입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의 비에르뇌위아섬에서 나온 데본기 후기 화석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출처: Ghedoghedo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원본 변경 없음.

    나무의 변화는 땅 위에서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뉴욕주 카이로의 약 3억 8천5백만 년 전 옛 토양에서는 사방으로 넓게 뻗고 다시 갈라지는 복잡한 뿌리들이 발견됐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아르카이오프테리스 계통의 뿌리로 해석했습니다. 2019년 온라인으로 발표된 이 연구는 초기 숲의 땅속 구조가 예상보다 정교했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뿌리는 나무를 붙잡는 말뚝이면서 물과 영양분을 얻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땅속으로 뻗은 뿌리와 떨어져 쌓인 식물 조각들은 흙과 물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나무들이 들어선 땅은 식물이 드물던 땅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아르카이오프테리스 목질부인 칼릭실론의 현미경 사진
    칼릭실론이라고 불리는 아르카이오프테리스의 목질부를 확대한 사진입니다. 잎 화석과는 다른 크기의 창으로 나무의 몸속을 들여다보는 셈입니다. 출처: K2727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원본 변경 없음.

    나무가 있어도 꽃과 씨앗이 당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모습을 흔히 보지만, 초기 숲에 그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으면 곤란합니다. 아르카이오프테리스는 나무처럼 자라면서도 씨앗 대신 포자를 만들었습니다. 키가 커지는 변화와 씨앗이 생기는 변화가 늘 한 묶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포자를 만드는 부분이 보존된 아르카이오프테리스 마킬렌타 화석
    번식과 관련된 부분이 남은 아르카이오프테리스 마킬렌타의 화석 표본입니다. 이런 흔적은 나무의 겉모습뿐 아니라 번식 방식도 알아보는 단서가 됩니다. 출처: Retallack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원본 변경 없음.

    나무가 하늘로 가지를 뻗으면 그 아래에는 그늘이 생기고, 떨어진 가지와 잎은 땅 위에 쌓입니다. 숲의 탄생은 커다란 식물이 많아진 사건이면서 다른 생명들이 살아갈 공간이 달라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숲이 기후와 공기, 물의 흐름을 얼마나 빠르게 바꿨는지까지 하나의 화석만으로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화석 숲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무 전체가 돌로 서 있는 풍경이 먼저 떠오릅니다. 실제로는 납작한 가지 한 조각이나 바닥에 남은 뿌리 자국이 숲의 흔적일 때도 있습니다. 그 작은 조각들을 이어 보면, 지금은 익숙한 나무 그늘이 지구에 자리 잡던 시간이 조금씩 보입니다.

    참고한 자료
    Davies 외(2024), 영국 데본기 초기 숲과 퇴적물의 상호작용
    Stein 외(2007), 길보아 나무의 밑동과 꼭대기를 연결한 화석
    Stein 외(2020, 온라인 발표 2019), 카이로 화석 숲의 복잡한 뿌리 구조
    Beck(1962), 아르카이오프테리스의 복원과 계통 연구

  • 지느러미는 어떻게 다리가 되었을까요? 물속에서 시작된 변화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와 지느러미를 딛고 걷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생긴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화석이 보여 주는 변화는 그보다 길고 복잡합니다. 몸을 받치는 뼈와 관절, 발가락 같은 특징이 한꺼번에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데본기의 물고기들 가운데에는 지느러미 안쪽의 뼈가 우리 팔다리와 대응하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화석을 초기 네발동물과 비교하면, 물속에서 사용하던 구조가 어떻게 달라져 갔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척추동물이 물에서 육지로 생활 범위를 넓힌 역사입니다. 모든 동물 가운데 최초로 땅에 오른 생물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손목을 닮은 구조가 지느러미 안에 있었습니다

    필드박물관에 전시된 틱타알릭 로제아이 화석 복제 표본
    틱타알릭의 머리와 몸 앞부분을 보여 주는 전시 표본입니다. 실제 화석을 본떠 만든 복제품이며, 살아 있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 출처: James St. John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제공된 사진·영상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약 3억 7,500만 년 전의 틱타알릭은 이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동물입니다. 비늘과 지느러미를 지닌 물고기이면서, 납작한 머리와 움직일 수 있는 목 등 네발동물을 떠올리게 하는 특징도 지녔습니다. 서로 다른 특징이 한 몸에 함께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가슴지느러미 안쪽에는 어깨와 팔꿈치, 손목 부근에 대응하는 뼈와 관절이 있습니다. 겉에 지느러미살이 남아 있으므로 사람 손을 작게 붙여 놓은 모습과는 다릅니다. 발가락을 가진 발과도 구분해야 합니다.

    런던 과학박물관에서 촬영한 틱타알릭 가슴지느러미 화석 복제품
    틱타알릭 가슴지느러미의 뼈를 가까이 본 사진입니다. 지느러미 쪽에서 어깨 방향을 본 화석 복제품입니다. 촬영 Richard G. Clegg, 원본 파일 보정 dave souza. 출처: Richard G. Clegg, dave souza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제공된 사진·영상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2006년 가슴지느러미 연구는 틱타알릭이 관절을 굽히고 뻗어 바닥에 몸을 받치는 자세를 취할 수 있었을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보존된 뼈와 관절의 형태가 그 근거입니다. 다만 이것이 오늘날 도마뱀처럼 육지를 자유롭게 걸어 다녔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얕은 물에서 바닥을 짚는 일과 마른 땅에서 온몸을 지탱하며 걷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발가락은 처음부터 다섯 개였을까요?

    스미스소니언 딥 타임 전시의 아칸토스테가 부분 골격 복제품
    아칸토스테가의 부분 골격을 본뜬 복제품입니다. 전시 표본 번호는 USNM PAL 617511입니다. 초기 네발동물의 뼈 구조를 살펴보는 자료입니다. 출처: Neil Pezzoni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제공된 사진·영상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후기 데본기의 아칸토스테가는 발가락이 있는 팔다리를 지녔습니다. 그런데 앞다리에서 확인된 발가락은 여덟 개입니다. 우리 손가락이 다섯 개라고 해서 초기 네발동물도 모두 다섯 개였던 것은 아닙니다.

    1990년 연구는 아칸토스테가의 앞다리 여덟 발가락, 이크티오스테가의 뒷다리 일곱 발가락을 보고했습니다. 연구진은 팔다리의 형태를 바탕으로, 발가락이 있는 다리가 물속 생활에 먼저 쓰였을 가능성을 제안했습니다. ‘다리가 있으니 이미 육상 동물입니다’라고 단순하게 나눌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칸토스테가에서는 물속 호흡과 관련된 아가미 구조도 연구되었습니다. 1991년 화석 분석은 물고기와 닮은 내부 아가미의 흔적을 근거로, 초기 네발동물이 완전한 육상 생활자였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발가락, 호흡, 몸을 받치는 능력은 각각 따로 살펴야 하는 특징입니다.

    다리가 있어도 걷는 방법은 달랐습니다

    모스크바 고생물박물관에 전시된 이크티오스테가 골격 표본
    이크티오스테가의 골격 전시 사진입니다. 뼈가 어떤 자세로 이어지고 관절이 얼마나 움직이는지는 이동 방법을 연구하는 단서입니다. 출처: OlegTarabanov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제공된 사진·영상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이크티오스테가도 후기 데본기의 초기 네발동물입니다. 팔다리와 튼튼한 몸통을 보면 오늘날의 도롱뇽처럼 걸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뼈의 생김새만 비슷하다고 움직임까지 같은 것은 아닙니다.

    2012년 연구는 화석을 바탕으로 삼차원 모형을 만들고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이크티오스테가는 오늘날 많은 네발동물이 하는 것처럼 팔다리를 번갈아 내딛는 전형적인 걸음걸이를 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땅에서 이동했다면 그 방법도 지금 익숙한 동물과 달랐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연구는 뼈만 보고 자세를 마음대로 정하지 않습니다. 관절끼리 맞닿는 모양과 가능한 회전을 살펴 움직임을 추정합니다. 그래도 근육과 피부가 모두 남은 것은 아니므로, 실제 행동을 직접 관찰한 기록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지금의 북극에서 따뜻했던 물가를 찾습니다

    랜드샛 7 위성이 관측한 캐나다 엘즈미어섬과 틱타알릭 발견 지역
    2000년 랜드샛 7이 관측한 오늘날의 엘즈미어섬입니다. 틱타알릭은 이 섬 남쪽 지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데본기의 풍경을 찍은 영상은 아닙니다. 출처: P. Timon McPhearson /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Landsat 7 자료 /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제공된 사진·영상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틱타알릭 화석은 캐나다 북극의 엘즈미어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은 눈과 얼음이 보이는 곳이지만, 데본기에는 대륙의 위치와 기후가 달랐습니다. NASA의 발견 지역 설명은 당시 이 지역이 적도 부근에 있었고 지금보다 따뜻했음을 소개합니다. 오늘의 위도만으로 옛 동물의 생활 환경을 짐작하면 안 되는 셈입니다.

    틱타알릭, 아칸토스테가, 이크티오스테가를 이름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한 동물이 바로 다음 동물로 바뀐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석들은 여러 갈래로 뻗은 계통의 일부입니다. 각각을 우리의 확정된 직접 조상으로 생각하기보다, 다른 특징들이 언제 어떤 조합으로 나타났는지 보여 주는 자료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지느러미 속의 관절, 다섯 개보다 많은 발가락, 물속 호흡의 흔적, 독특한 관절 움직임까지. 물과 육지 사이의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경계선처럼 또렷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화석을 한 부분씩 들여다볼수록, 익숙한 팔다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져 온 구조라는 점이 더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 데본기는 왜 물고기의 시대라고 부를까요? 갑옷과 지느러미의 이야기

    물고기 화석을 나란히 놓고 보면 뜻밖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머리에 방패를 쓴 듯한 물고기도 있고, 단단한 판으로 몸 앞부분을 감싼 물고기도 있습니다. 오늘날 생선 가게에서 보는 물고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실루리아기 뒤에 이어지는 데본기는 대략 4억 2천만 년 전부터 3억 6천만 년 전 사이입니다. 이 시기에는 턱 없는 물고기, 갑옷 같은 판을 지닌 물고기, 연골어류, 여러 경골어류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데본기를 흔히 ‘물고기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물고기가 이때 처음 생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턱이 없는 물고기도 함께 살았습니다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케팔라스피스 리엘리 화석
    넓적한 머리 부분이 눈에 띄는 케팔라스피스 화석입니다. 위아래로 맞물리는 턱이 없는 물고기 무리에 속합니다. 사진: Arkadianos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제공된 사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속 케팔라스피스는 턱이 없는 물고기입니다. 머리에는 넓은 방패 같은 단단한 부분이 있습니다. 오래된 물고기를 생각할 때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사냥꾼만 떠올리기 쉽지만, 당시 물속에는 이와 다른 몸 구조를 가진 동물들도 있었습니다.

    턱 있는 물고기의 역사도 데본기보다 앞섭니다. 2022년 연구에서는 중국 충칭의 약 4억 3,600만 년 전 실루리아기 지층에서 몸 전체가 잘 보존된 턱 있는 물고기들을 보고했습니다. 데본기는 새로운 물고기가 갑자기 나타난 출발선이라기보다, 이미 이어져 온 여러 계통이 한층 다양해진 시간으로 보는 편이 알맞습니다.

    갑옷을 입었다고 모두 같은 물고기는 아닙니다

    단단한 판으로 덮인 보트리올레피스 카나덴시스의 몸 앞부분 화석
    보트리올레피스의 단단한 몸 앞부분입니다. 껍데기처럼 보이는 판도 물고기 몸의 일부입니다. 사진: Mike Beauregard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제공된 사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보트리올레피스는 ‘판피어류’라고 부르는 멸종한 물고기 무리에 속합니다. 머리와 몸 앞부분을 단단한 판이 감싸고 있습니다. 갑옷이라는 비유가 잘 어울리지만, 사람이 입었다 벗는 갑옷처럼 별도의 물건은 아닙니다.

    판피어류에는 생김새와 크기가 다른 여러 종류가 있었습니다. 보트리올레피스와 유명한 둔클레오스테우스도 같은 모습으로 살았던 동물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물고기들을 모두 거대한 포식자로 그려 놓으면 당시 생태계의 다양함을 놓치게 됩니다.

    둔클레오스테우스 테렐리 표본 CMNH 5768의 머리와 몸 앞부분 골격
    둔클레오스테우스 표본 CMNH 5768입니다. 출처 설명에 따르면 머리와 아래쪽 갑옷은 실제 화석이며, 가슴 쪽 판 일부는 복원되었습니다. 전체 몸이 보존된 표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진: Russell K. Engelman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제공된 사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둔클레오스테우스는 커다란 머리와 강력한 턱으로 알려진 후기 데본기의 포식자입니다. 상어는 아니며, 날카롭게 발달한 턱의 뼈판을 사용했습니다. 사진에서 이빨처럼 보이는 뾰족한 부분을 오늘날 상어의 이빨과 같은 구조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몸길이에는 추정이 들어갑니다. 뒤쪽 몸이 잘 남지 않아 머리와 다른 물고기의 몸 비율을 비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23년 연구는 대표적인 성체 표본의 몸길이를 약 3.4미터, 더 큰 표본을 약 4.1미터로 추정했습니다. 2024년 후속 연구도 이런 몸 비율을 검토했습니다. 직접 재어 본 완전한 몸길이가 아니라, 보존된 뼈를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입니다.

    지느러미에도 서로 다른 길이 있었습니다

    미구아샤 국립공원에 전시된 케이롤레피스 카나덴시스 화석
    케이롤레피스 카나덴시스 화석입니다. 오늘날 물고기의 큰 무리인 조기어류의 초기 역사를 보여 주는 동물입니다. 사진: Placoderm2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제공된 사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케이롤레피스는 지느러미를 가는 지느러미살이 받치는 ‘조기어류’입니다. 오늘날 많은 익숙한 물고기가 이 큰 무리에 속합니다. 그렇다고 사진 속 한 종이 모든 현대 물고기의 직접 조상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통의 오래된 모습을 이해하는 자료라는 뜻입니다.

    물고기의 먹이도 화석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구아샤 국립공원의 자료는 케이롤레피스와 에우스테놉테론의 날카로운 이빨, 위 내용물, 화석화된 배설물 등을 통해 포식과 먹이 관계를 설명합니다. 단단한 머리뼈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삶의 모습이 이런 작은 흔적에서 드러납니다.

    클리블랜드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에우스테놉테론 화석
    살이 있는 지느러미를 가진 무리인 육기어류의 에우스테놉테론입니다. 물속에서 살던 물고기이며, 이 화석 사진이 육지에서 걸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사진: Tim Evanson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제공된 사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에우스테놉테론은 ‘육기어류’입니다. 지느러미의 살이 있는 부분 안쪽에 뼈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우리 위팔뼈에 대응하는 뼈도 있습니다. 물고기 지느러미와 네발동물의 팔다리가 전혀 관계없는 구조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2014년 연구는 에우스테놉테론 지느러미뼈의 내부를 정밀하게 분석해 네발동물과 닮은 뼈 성장 특징을 살폈습니다. 그렇지만 연구에서도 이 동물은 뚜렷한 육상 적응이 보이지 않는 수중 포식자로 설명합니다. 비슷한 뼈가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땅 위를 걸었습니다’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 사진들의 물고기가 모두 같은 시기, 같은 물속에서 만났던 것도 아닙니다. 데본기는 수천만 년 동안 이어졌고, 바다와 강, 하구 등 환경도 서로 달랐습니다. 화석의 시대와 발견 지역을 함께 보아야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패 같은 머리, 단단한 판, 날카로운 턱, 서로 다른 지느러미까지. 데본기를 물고기의 시대라고 부르는 까닭은 단지 큰 물고기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속에서 살아가는 여러 몸의 형태가 풍성하게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돌 속에 남은 물고기 한 마리에도 그 긴 역사의 한 갈래가 담겨 있습니다.

    시대와 생물 무리 참고: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의 생물 다양화 자료. 사진의 출처와 사용 조건은 각 설명 아래에 표시했습니다.

  • 땅 위의 식물은 처음부터 나무였을까요? 실루리아기의 작은 줄기들

    지금의 산에는 나무가 높이 자라고, 그 아래에는 풀과 작은 식물들이 겹겹이 살아갑니다. 이런 풍경에 익숙하다 보니 식물이 처음 땅에 자리 잡았을 때도 작은 숲이 있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오래된 식물 화석은 훨씬 소박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오르도비스기 뒤에 이어지는 실루리아기에는 갈라진 가느다란 줄기와 그 끝에 달린 작은 주머니를 가진 식물들이 살았습니다. 꽃도, 넓은 잎도 없는 모습입니다. 그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쿡소니아’입니다.

    웨일스 박물관 소장 실루리아기 쿡소니아 페르토니 화석
    실루리아기의 작은 육상 식물 쿡소니아 페르토니입니다. 가는 줄기가 갈라지는 모습을 찾아보세요. 소장 번호 79.17G.3, Museum Wales 제공 사진입니다. 사진: By permission of Amgueddfa Cymru – Museum Wales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제공된 사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줄기 끝에는 무엇이 달렸을까요?

    쿡소니아의 화석에서는 줄기가 두 갈래로 나뉘고, 끝에 포자를 만드는 주머니가 달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주머니를 ‘포자낭’이라고 합니다. 꽃봉오리나 열매처럼 보일 수 있지만, 꽃도 열매도 아닙니다.

    쿡소니아라는 이름으로 묶인 화석들은 크기와 세부 모양이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몇 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몸으로 알려진 종류도 있습니다. 키 큰 나무를 작게 줄여 놓았다기보다, 잎 없는 줄기와 포자낭이라는 단순한 구조를 먼저 떠올리는 편이 좋겠습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쿡소니아 페르토니 화석
    다른 쿡소니아 페르토니 표본입니다. 줄기의 끝과 갈라지는 지점을 비교해 보세요. 스미스소니언 전시 표본 USNM 298794를 촬영했습니다. 사진: Jonathan Chen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제공된 사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연구에서는 체코에서 나온 약 4억 3,200만 년 전의 쿡소니아 바란데이 화석을 소개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식물의 비교적 굵은 줄기를 근거로, 포자낭을 지닌 몸이 스스로 광합성하며 살아갔을 가능성을 제안했습니다. 줄기 모양은 관찰한 증거이고, 당시의 생활 방식은 그 증거로 추론한 해석입니다. 사진 속 페르토니와 이 연구의 바란데이는 서로 다른 종입니다.

    그렇다면 쿡소니아가 맨 처음이었을까요?

    유명한 초기 식물이라고 해서 지구 최초의 육상 식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쿡소니아의 줄기 화석보다 앞선 오르도비스기 지층에서도 육상 식물의 것으로 해석되는 포자가 발견됩니다. 몸 전체가 남지 않아도 작은 흔적이 먼저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입니다.

    2003년 오만의 화석 연구는 포자가 모여 들어 있는 아주 작은 식물 조각을 분석했습니다. 포자가 식물의 주머니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더해지면서, 초기 포자들이 육상 식물에서 왔다는 해석을 뒷받침했습니다. 다만 이 작은 조각만으로 그 식물의 전체 생김새를 모두 복원할 수는 없습니다.

    포자를 만드는 자루와 주머니가 솟아 있는 오늘날의 이끼
    오늘날의 이끼 사진입니다. 가는 자루 끝의 주머니에서 포자가 만들어집니다. 초기 식물의 번식을 이해하기 위한 비교 자료이며, 이 이끼가 옛 식물과 똑같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진: ceridwen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제공된 사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포자는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는 데 쓰이는 작은 세포입니다. 씨앗과는 구조와 생활 과정이 다릅니다. 오늘날 이끼나 양치식물도 포자를 만듭니다. 이런 살아 있는 식물을 보면 꽃과 씨앗 없이도 삶을 이어가는 방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이끼가 수억 년 동안 아무 변화 없이 남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땅에서 살려면 물을 지키고 옮겨야 합니다

    물속과 땅 위는 생활 조건이 다릅니다. 공기 중에 드러난 몸은 마르기 쉽고, 물의 도움 없이 몸을 받쳐야 합니다. 바닥에서 얻은 물을 몸의 다른 부분으로 보내는 일도 중요해집니다. 작은 줄기 하나가 똑바로 서 있는 모습에도 이런 어려움과 관련된 구조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양치식물의 포자낭들이 모여 있는 현미경 사진
    오늘날 양치식물의 포자낭 무리를 확대한 사진입니다. 초기 육상 식물 화석이 아니라, 포자를 만드는 구조를 가까이 보기 위한 비교 자료입니다. 사진: Ilse Anahi Carrasco / Wikimedia Commons, CC BY 4.0. 제공된 사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육상 식물의 역사에서는 수분 손실을 줄이는 표면, 기체를 드나들게 하는 작은 구멍, 물을 이동시키는 조직 등 여러 구조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특징이 어느 날 한 식물에 한꺼번에 생겼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화석마다 어떤 부분이 실제로 보존되어 있는지를 따로 살펴야 합니다.

    특히 겉모습만으로 물을 운반하는 조직까지 확인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얇게 자른 암석 속에 식물의 내부 조직이 남아 있으면 훨씬 자세한 비교가 가능합니다. 아래 사진은 실루리아기보다 뒤인 초기 데본기의 라이니아 줄기 단면입니다. 원처럼 보이는 몸 안에도 서로 다른 조직이 구분됩니다.

    초기 데본기 라이니 처트에 보존된 라이니아 줄기의 가로 단면
    라이니아 줄기를 가로로 자른 단면의 현미경 사진입니다. 실루리아기 쿡소니아보다 뒤인 초기 데본기 화석입니다. 식물의 내부 구조를 연구하는 방법을 보여 주는 비교 자료입니다. 사진: Plantsurfer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UK. 제공된 사진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발견되는 지역도 계속 넓어지고 있습니다. 2024년 연구에서는 아르헨티나 린코나다층의 후기 실루리아기 식물 화석들을 보고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초기 식물과 필석이 함께 나온 지층을 분석해 시대와 퇴적 환경을 살폈습니다. 육상 식물의 조각이 바다 쪽 퇴적물에 묻히기도 하므로, 발견 장소가 곧 그 식물이 자란 자리인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이렇게 포자, 줄기, 주머니, 내부 조직을 하나씩 맞추어 가면 땅 위 식물의 역사가 드러납니다. 실루리아기의 땅을 오늘날의 숲처럼 그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느다란 줄기와 작은 포자낭만으로도 식물이 땅에서 살아가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발밑의 작은 이끼도 가까이 보면 꽤 복잡한 삶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된 식물 화석을 보고 나면, 키가 작고 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식물을 단순하게 넘겨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