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심고 마을을 이루다, 신석기 사람들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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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을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숲에서 열매를 따고,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먹을 식물이 집 가까이에서 자란다면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사람들이 식물을 돌보고 동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먹을 것을 얻는 방법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땅에 씨앗을 심고 수확을 기다리는 시간이 생활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오늘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밭과 집, 그리고 마을을 살펴보겠습니다.

서아시아 신석기 농경 마을에서 곡식을 거두는 사람들의 AI 상상도
곡식을 거두는 신석기 농경 마을을 떠올린 AI 상상도입니다. 특정 유적이나 농경의 첫 순간을 재현한 사진은 아니며, 인물·의복·건물·빛은 설명을 위한 시각적 연출입니다.

농사는 하루아침에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농경의 시작을 누군가 씨앗 한 줌을 뿌린 어느 하루로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야생 식물을 모으던 사람들이 식물의 자라는 때와 장소를 알아가고, 일부를 돌보거나 심는 일이 오랫동안 쌓였기 때문입니다.

서아시아에서는 대략 1만 2천 년 전 무렵부터 농경으로 이어지는 변화가 뚜렷해집니다. 지금의 이란에 있는 초가 골란 유적에서는 약 2천 년에 걸친 식물 이용의 흔적을 통해, 야생 식물을 활용하던 생활에서 작물을 기르는 생활로 옮겨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 해에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뀐 모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자료: 초가 골란 유적의 농경 기원 연구

곡식을 심었다고 해서 곧바로 오늘날의 작물이 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식물을 재배하고 씨앗을 거두는 과정이 여러 세대 이어지면서 식물의 성질도 달라졌습니다. 식물을 심어 돌보는 ‘재배’와, 식물 자체에 유전적인 변화가 쌓이는 ‘작물화’는 구별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씨앗을 심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씨앗을 먹지 않고 남겨두어야 합니다. 땅을 돌보고, 싹이 자라는 동안 기다리고, 거둔 곡식을 보관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당장 한 끼를 마련하는 일에 더해 몇 달 뒤의 먹을거리까지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농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열매 따기와 사냥을 모두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초기에는 기른 식물과 야생에서 얻은 먹거리를 함께 이용했습니다. 비가 적게 오거나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 해에는 여러 먹거리를 구하는 지식이 더욱 소중했을 것입니다.

농경이 시작된 까닭도 한 가지로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기후와 주변 환경, 사람들의 수와 생활 방식 등 여러 조건이 지역마다 다르게 작용했습니다. 같은 농경이라도 시작된 과정까지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자료: 초가 골란의 식물 유체와 생활 변화 연구

밭보다 먼저 집이 생긴 곳도 있습니다

흔히 농사를 시작한 뒤에야 사람들이 한곳에 정착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아시아에는 농경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한곳에 오래 머물렀던 집단도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먹을거리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면,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만 집을 짓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료: 런던대학교 연구자의 농경 기원 검토

정착과 농경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했지만, 어느 곳에서나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 일은 아닙니다.

한곳에 오래 살면 집을 고쳐 쓰고 물건을 보관하기가 쉬워집니다. 이웃과 자주 만나고 함께 일할 기회도 생깁니다. 동시에 먹을 것을 어떻게 나누고, 여러 사람이 쓰는 공간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생각해야 했을 것입니다. 집 몇 채가 모인 마을에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눈이 쌓인 서울 암사동 유적의 복원 움집들
서울 암사동 유적에 복원해 놓은 움집들입니다. 당시 건물이 그대로 남은 모습은 아닙니다. 사진: Jtm71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KR.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토기와 돌 도구에 생활이 남아 있습니다

흙으로 그릇을 빚어 불에 구우면 토기가 됩니다. 토기는 음식을 담고 조리하는 데 쓸 수 있었습니다. 돌로 만든 도구도 용도에 따라 다양해졌습니다. 날을 갈아 다듬은 도구가 쓰였고, 식물성 먹거리를 가공하는 갈돌과 갈판도 이용했습니다.

곡물을 갈던 오목한 돌 도구인 영국 출토 새들 퀀
곡물을 돌로 갈아 가공하는 도구의 한 예입니다. 한반도 유물이 아니라 영국 출토품이며, 자료에는 신석기 말부터 철기시대까지 사용된 유형으로 소개됩니다. 사진: The Portable Antiquities Scheme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촬영 Adam Daubney, CC BY-SA 2.0.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다만 토기가 발견됐다는 이유만으로 그곳 사람들이 모두 농사에 의지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간석기를 사용했다고 뗀석기가 곧바로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오래 쓰던 도구와 새로운 도구가 함께 생활을 도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는 빗살무늬토기가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개하는 서울 암사동 출토 토기에는 표면을 나누어 새긴 여러 무늬가 남아 있습니다. 그릇을 바라보면 흙을 빚고 무늬를 넣었던 사람의 손길이 조금 가까이 느껴집니다.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빗살무늬토기

표면에 빗살 모양 무늬가 새겨진 암사동 출토 빗살무늬토기
서울 암사동 출토 빗살무늬토기를 대영박물관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본문에 소개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는 별개의 유물입니다. 사진: PHGCOM, 색상 보정 Ismoon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공개된 파일을 추가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한반도의 신석기 생활은 어땠을까요?

한반도의 신석기 사람들은 강과 바다 주변에서 물고기와 조개를 얻고, 열매를 모으고, 사냥도 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조와 기장 같은 곡물을 이용하는 소규모 농경이 더해졌습니다. 오늘날처럼 논밭에서 기른 곡식만을 중심으로 생활했다고 떠올리면 당시 모습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인천 영종도의 운서동과 중산동 신석기 마을에서도 조와 기장 같은 곡물을 활용하고 갈판과 갈돌로 가공한 생활이 소개됩니다. 한반도 안에서도 살던 곳과 시기에 따라 먹을거리와 도구, 집의 모습이 달랐습니다. 자료: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의 신석기 마을과 토기 설명

암사동 선사주거지 전시관의 움집터와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 모형
암사동 선사주거지 전시관의 집터와 생활 전시 모습입니다. 사진 속 인물은 당시 생활을 설명하기 위한 모형입니다. 사진: 강병기 / Wikimedia Commons, CC BY 3.0.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으며, 업로드 과정에서 크기가 자동 조정됐습니다.

서아시아에서 농경이 시작된 때를 그대로 한반도의 신석기 시작 시점으로 옮길 수도 없습니다. ‘신석기 시대’라는 같은 이름을 쓰더라도 지역마다 시기와 생활의 특징이 다릅니다.

씨앗을 심고 거둘 때까지 기다리는 일, 집을 손보고 그릇에 먹을 것을 담는 일은 아주 오래된 생활입니다. 남아 있는 씨앗과 집터, 깨진 토기 조각은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살았는지 알려줍니다. 작은 밭과 집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람과 땅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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