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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과 불로 살아간 사람들, 구석기 시대에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강가에서 주운 돌 하나가 칼이 되고, 어두운 저녁에 피운 불이 식사 자리를 밝혀 줍니다. 집과 가게가 없던 먼 옛날, 사람들은 주변의 돌과 나무, 동물과 식물을 살피며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생활은 이런 작은 흔적을 따라가며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구석기는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던 아주 긴 시대를 가리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이 한 가지 방식으로 살았던 때는 아닙니다. 여러 인류가 서로 다른 기후와 환경에서 살았고, 지역마다 도구와 생활 방식이 달라진 시점도 달랐습니다.

    깨진 돌조각이 쓸모 있는 날이 되었습니다

    돌을 다른 돌로 두드리면 조각이 떨어져 나옵니다. 그 조각의 가장자리는 생각보다 날카롭습니다. 초기 인류는 이런 날을 이용해 고기나 가죽을 자를 수 있었습니다. 남은 몸돌뿐 아니라 떨어져 나온 격지도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그냥 깨진 돌처럼 보이는 유물에도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두드렸는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 번 떼어낸 자국과 날이 보이는 올도완 전통의 돌 도구
    올도완 전통의 돌 도구 사진입니다. 로메크위에서 발견된 유물 사진은 아닙니다. 출처: José-Manuel Benito Álvarez / Wikimedia Commons, CC BY-SA 2.5.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석기 제작의 시작을 딱 한 해로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케냐 로메크위에서는 약 330만 년 전으로 보고된 석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구석기의 시작을 약 260만 년 전으로 설명하는 자료도 있지만, 더 오래된 발견까지 함께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자료: Harmand 외, 2015년 로메크위 석기 연구

    돌의 양쪽을 다듬는 솜씨도 생겼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돌의 양쪽 면을 떼어 내고 가장자리를 다듬은 주먹도끼도 나타났습니다. 이름에는 도끼가 들어가지만, 오늘날 나무 자루에 쇠날을 붙인 도끼와는 다릅니다. 손에 쥐고 쓰는 큰 날 도구로, 여러 작업에 이용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두에로강 계곡에서 나온 아몬드 모양 주먹도끼의 여러 면
    양쪽 면을 다듬은 주먹도끼입니다. 사진의 유물은 스페인 바야돌리드 지역의 지표 유적에서 나온 것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출처: José-Manuel Benito Álvarez / Wikimedia Commons, CC BY-SA 2.5.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약 176만 년 전에는 아슐리안이라고 부르는 도구 전통에서 주먹도끼 같은 큰 날 도구가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모든 지역이 같은 날 새 도구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방식과 새로운 방식이 함께 쓰이기도 했습니다. 돌을 고르고, 힘을 조절하고, 필요한 날을 만드는 데에는 경험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의 초기 석기 설명

    불은 언제부터 곁에 있었을까요?

    불은 따뜻함과 빛을 주고, 음식을 익히는 데에도 쓰입니다. 익힌 음식은 종류에 따라 먹고 소화하기 쉬워집니다. 하지만 산불이 난 흔적과 사람이 관리한 불의 흔적은 구분해야 합니다. 흙이 탔다고 해서 곧바로 사람들이 불을 피웠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위 그늘의 불가에 모여 음식을 먹는 후기 구석기 사람들의 AI 상상도
    후기 구석기 사람들의 불가 생활을 떠올려 만든 AI 상상도입니다. 특정 유적이나 실제 인물의 모습을 복원한 자료는 아닙니다. 약 100만 년 전 초기 인류의 불 사용 장면을 그린 것도 아닙니다. 의복·도구·인물·조명에는 시각적 연출이 포함돼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원더워크 동굴에서는 약 100만 년 전 지층의 탄 뼈와 재가 된 식물 흔적이 분석되었습니다. 연구진은 동굴 안에서 불이 탔다는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다만 불을 이용한 때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불을 만들어 낸 때는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불 사용의 시작과 확산은 지금도 연구가 이어지는 주제입니다. 자료: Berna 외, 2012년 원더워크 동굴 연구

    먹이와 물을 찾아 움직였습니다

    구석기 사람들의 식탁에 고기만 올라온 것은 아닙니다. 살던 곳과 계절에 따라 열매와 뿌리, 견과류 같은 식물성 먹이를 모았고, 동물이나 물가의 자원도 이용했습니다. 먹이를 얻는 방법은 환경과 도구, 시기에 따라 달랐습니다.

    짐과 도구를 들고 강 계곡을 따라 이동하는 후기 구석기 사람들의 AI 상상도
    강 주변을 따라 이동하는 후기 구석기 수렵채집 집단을 떠올린 AI 상상도입니다. 특정 이동 경로나 실제 집단을 재현한 사진이 아니며, 인물·의복·풍경은 설명을 위한 시각적 연출입니다.

    물과 먹이를 얻기 좋은 곳, 도구를 만들 돌이 있는 곳, 추위와 비를 피할 곳을 알아두는 일은 중요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매일 목적 없이 떠돌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장소에 머물다가 계절에 따라 움직이거나, 익숙한 곳을 다시 찾는 생활도 가능했습니다. 동굴뿐 아니라 바위 그늘과 야외 공간도 이용했습니다. 남은 유물의 위치와 불자리, 동물 뼈를 함께 살피면 이런 생활의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의 불자리와 거처 설명

    작은 무늬에는 어떤 생각이 담겼을까요?

    돌은 먹이를 자르는 데만 쓰이지 않았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블롬보스 동굴에서는 선을 새긴 붉은 황토 조각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서로 교차하는 선을 보면 누군가 표면을 살피며 흔적을 남기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된 황토 조각에 새겨진 교차하는 선 무늬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된 무늬가 새겨진 황토 조각 사진입니다. 출처: Chris S. Henshilwood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공개된 파일을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다만 그 무늬가 정확히 무엇을 뜻했는지까지 읽을 수는 없습니다. 집단을 나타내는 표시였는지, 누군가에게 뜻을 전하려 했는지 등은 연구자들이 검토하는 해석입니다. 남은 선은 볼 수 있어도, 그것을 새긴 사람의 생각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료: 초기 무늬와 상징 행동을 살핀 연구

    구석기 시대를 단순히 불편하고 뒤처진 시절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돌의 성질을 구별하는 눈, 먹을 것을 찾는 지식, 변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작은 돌날과 불의 흔적은 그들이 매일의 생활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시도했는지 조용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 공룡이 사라진 뒤, 포유류와 우리의 먼 조상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공룡이 사라진 뒤의 지구를 떠올리면 곧바로 매머드나 원시인이 생각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수천만 년이라는 긴 시간이 놓여 있습니다. 작은 포유류들이 여러 모습으로 갈라져 나가고, 그보다 훨씬 뒤에야 우리의 먼 친척들이 두 발로 땅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공룡 옆에도 작은 포유류가 살았습니다

    약 6,600만 년 전 대멸종으로 새를 제외한 공룡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그때 처음 포유류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포유류와 그 가까운 친척들은 공룡이 살던 중생대에도 이미 지구에 있었습니다. 몸집이 작은 종류도 많았지만, 그들 역시 저마다 먹이를 구하고 새끼를 기르며 살아가던 동물들이었습니다.

    긴 꼬리와 작은 몸을 가진 중생대 포유류형 동물 모르가누코돈의 복원도
    공룡이 살던 시대의 작은 이웃, 모르가누코돈의 복원도입니다. 신생대 동물이나 실제 사진이 아니라, 뼈의 구조를 바탕으로 그린 중생대 동물의 그림입니다. 출처: FunkMonk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대멸종 뒤에는 살아남은 포유류가 이용할 수 있는 먹이와 생활 공간의 구성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땅 위를 달리는 무리, 나무를 타는 무리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이 펼쳐졌습니다. 다만 모든 포유류가 살아남거나 한꺼번에 커진 것은 아닙니다. 대멸종은 포유류에게도 큰 위기였습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의 포유류 고생물 설명

    옛날 말의 발에는 발가락이 보입니다

    신생대는 약 6,600만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시대입니다. 그 긴 변화를 살펴볼 때 말의 화석은 좋은 단서가 됩니다. 지금 말의 발끝에는 큰 발굽 하나가 눈에 띄지만, 옛 말의 친척 중에는 여러 발가락을 가진 종류도 있었습니다.

    메소히푸스는 각 발에 발가락이 세 개 있던 말과 동물입니다. 사진에서 다리 끝의 뼈를 살펴보면 지금의 말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뼈 하나하나는 동물이 몸을 어떻게 지탱했는지 알려주는 작은 기록입니다. 자료: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의 메소히푸스 설명

    메소히푸스의 두개골과 전체 골격, 세 발가락이 보이는 앞발 골격 전시
    메소히푸스의 골격을 본뜬 전시물입니다. 맨 오른쪽의 발뼈를 보면 세 발가락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처: H. Zell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말의 역사를 작은 동물이 점점 커져 오늘의 말이 되는 한 줄짜리 이야기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 계통이 갈라졌고, 뒤에 등장했어도 몸집이 작은 종류나 세 발가락을 유지한 종류가 있었습니다. 진화는 정해진 완성품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보다, 여러 방향으로 뻗는 나뭇가지에 가깝습니다. 자료: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말 진화 전시

    우리의 먼 친척도 나뭇가지처럼 갈라졌습니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의 침팬지가 어느 날 사람으로 바뀐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침팬지는 먼 과거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서로 다른 계통입니다. 또 옛 인류가 한 종류씩 차례대로 등장해 앞선 종류를 모두 대신한 것도 아닙니다. 여러 종류가 같은 시대에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 인류 진화 문답

    그 긴 역사에서 잘 알려진 화석이 ‘루시’입니다. 약 320만 년 전 지금의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한 개체입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뼈를 보면 무엇을 알아냈는지 이해하기가 조금 쉬워집니다.

    박물관에 세워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의 골격 복원 전시
    루시의 뼈를 바탕으로 몸 전체의 모습을 복원한 박물관 전시입니다. 원래 발견된 뼈가 온전한 전신 골격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출처: Andrew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짧고 넓은 골반과 안쪽으로 기울어진 넓적다리뼈는 두 발로 걷는 몸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팔과 손발에는 나무 타기와 관련된 특징도 남아 있었습니다. 땅에서 걷기와 나무에서 생활하기가 함께 어우러진 몸이었던 셈입니다. 두 발로 걷기, 큰 뇌, 오늘날과 같은 몸이 어느 날 한꺼번에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의 루시 화석 설명

    발자국에는 걸음걸이도 남아 있습니다

    뼈만 옛 생활을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탄자니아 라에톨리에는 약 366만 년 전 화산재 위에 남은 발자국 길이 있습니다. 누군가 지나간 뒤에 흔적이 보존되어, 그때의 걸음을 오늘날까지 전해 주는 것입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의 라에톨리 발자국 설명

    현대인의 두 가지 걸음으로 만든 발자국과 라에톨리 발자국의 깊이를 비교한 연구 그림
    A는 현대인의 보통 걸음, B는 무릎과 엉덩이를 굽힌 걸음으로 만든 실험 발자국입니다. C가 라에톨리 발자국의 측정 자료입니다. 색과 선은 발자국의 깊이를 나타내며, 현장 사진이 아닌 연구용 비교 그림입니다. 출처: Raichlen·Gordon·Harcourt-Smith·Foster·Haas / Wikimedia Commons, CC BY 2.5.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발뒤꿈치와 발가락이 눌린 깊이 등을 현대인의 실험 발자국과 비교했습니다. 2010년 연구는 라에톨리 발자국에서 사람과 비슷한 두 발 걷기의 특징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발자국만 보고 그 주인의 얼굴이나 모든 생활 모습을 알 수는 없습니다. 남은 흔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상상해야 하는 부분을 나누어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자료: Raichlen 외, 2010년 발자국 연구

    더 먼 곳으로 걸어간 초기 인류

    시간을 더 지나 약 190만 년 전 무렵으로 가면 호모 에렉투스가 화석 기록에 나타납니다. 이들은 앞선 인류보다 몸통에 비해 다리가 길고 팔이 짧아, 땅 위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 어울리는 몸의 비율을 보입니다.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지역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호모 에렉투스 두개골
    호모 에렉투스의 두개골 전시 사진입니다. 박물관의 두개골 자료는 초기 인류의 머리뼈 모양을 비교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출처: Tiia Monto /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내용 수정 없이 게재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가 살던 오랜 기간에는 돌을 다듬는 기술도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같은 도구를 쓰고 같은 생활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넓은 지역에 오랫동안 살았던 만큼, 남아 있는 유적도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종을 어디까지 나누어 부를지에 대해서도 연구자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자료: 스미스소니언의 호모 에렉투스 설명

    작은 포유류의 턱뼈, 세 발가락을 가진 옛 말의 발, 루시의 골반, 화산재 위의 발자국은 서로 다른 시간의 기록입니다. 이들을 차례로 살펴보면 공룡의 멸종과 사람의 등장이 바로 이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천만 년 동안 갈라지고 사라지고 살아남은 생명들의 역사 속에, 두 발로 걸었던 우리의 먼 친척들도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