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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수메르 사람들은 강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고, 도시를 세우고, 젖은 점토에 글자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문명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 도시를 만든 인간은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사람이 없던 지구에도 강은 흘렀고, 숲에는 동물들이 살았습니다. 지금처럼 말하고 글을 쓰는 사람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과학은 인간의 등장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친 변화로 설명합니다. 땅속에서 발견되는 뼈와 발자국, 돌도구, 그리고 우리 몸에 남아 있는 유전자가 그 과정을 알려주는 단서입니다.

    사람은 지금의 원숭이에서 나온 것일까요?

    인류의 진화라고 하면 원숭이가 조금씩 허리를 펴다가 마지막에 사람이 되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그림만으로는 실제 과정을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지금 살아 있는 침팬지에서 태어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과 침팬지의 계통을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 조상과 만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먼 친척끼리 족보를 따라 올라가다가 같은 조상을 만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공통 조상은 대략 600만~80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여러 집단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습니다. 오늘날의 침팬지도 그동안 자기 계통의 진화를 이어왔습니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설명

    진화는 한 동물이 살아 있는 동안 다른 동물로 변하는 일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작은 차이가 수많은 세대에 걸쳐 쌓이고, 집단이 갈라지면서 긴 시간 뒤에는 큰 차이가 나타나는 과정입니다.

    커다란 뇌보다 먼저 두 발로 걸었습니다

    우리의 먼 친척들에게 나타난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두 발로 걷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처럼 걷기 위해서는 다리만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골반과 척추, 무릎과 발도 몸의 무게를 받칠 수 있어야 합니다. 연구자들은 오래된 뼈의 모양과 땅에 남은 발자국을 살펴보며 당시의 걸음걸이를 알아냅니다.

    유명한 화석 ‘루시’가 속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두 발로 걸었지만, 나무를 타는 데 도움이 되는 몸의 특징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람처럼 큰 뇌를 갖기 전에 이미 두 발 걷기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루시 설명

    왜 두 발로 걷기 시작했는지는 한 가지 이유로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먹이를 구하는 방법과 이동 방식, 달라지는 주변 환경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지금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사다리보다 나무에 가깝습니다

    옛 인류의 이름을 차례로 늘어놓으면 한 종류가 사라진 뒤 다음 종류가 나타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는 여러 인류가 같은 시대에 살기도 했습니다. 어떤 계통은 후손을 남겼고, 어떤 계통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한 줄로 올라가는 사다리보다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은 나무에 가깝습니다.

    우리와 다른 옛 인류를 모두 ‘덜 완성된 사람’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도 각자의 환경에서 살아가던 존재였습니다. 인류의 진화가 처음부터 오늘날의 우리를 목표로 정해 놓고 진행된 것은 아닙니다. 스미스소니언의 인류 진화 안내

    이렇게 생각하면 오래된 해골 하나도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에게 이르기 위한 중간 단계의 표본이 아니라, 오래전 자기 삶을 살았던 한 존재의 흔적입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은 언제 나타났을까요?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같은 종에 속합니다. 생김새와 사용하는 언어, 사는 곳이 달라도 모두 같은 종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약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등장한 것으로 설명됩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아기가 태어나면서 갑자기 인류가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변화가 쌓이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첫 번째 사람’의 생일을 정하듯 날짜를 짚을 수는 없습니다. 스미스소니언의 호모 사피엔스 설명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에는 오늘날 우리와 비슷한 특징과 더 오래된 특징이 함께 나타납니다. 얼굴과 머리뼈의 여러 부분이 한꺼번에 지금 모습으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어디에서 어떤 집단들이 만나고 연결되며 우리가 되었는지는 계속 연구하는 문제입니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현생인류 기원 설명

    ‘약 30만 년’이라는 말도 발견된 증거를 바탕으로 한 연대입니다. 새로운 화석과 분석 방법이 나오면 세부적인 설명은 더 정교해질 수 있습니다.

    땅속의 흔적은 어디까지 말해줄까요?

    사람의 기원은 과학만이 아니라 신화와 종교에서도 오랫동안 다뤄온 질문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창조 이야기가 있고, 수메르에도 신들이 인간을 만드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인간의 시작에 관해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다만 창조 이야기가 전하는 의미와 화석·유전자가 보여주는 생물학적 역사는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된 기록을 읽을 때도 실제로 적혀 있는 내용과 오늘날 우리가 덧붙이는 해석을 나누어야 합니다.

    아직 모르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빈칸이 모두 같은 크기는 아닙니다. 여러 증거가 함께 뒷받침하는 설명도 있고, 가능성을 두고 논의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궁금한 점을 오래 들여다보려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메르의 도시와 문자는 인간의 긴 역사에서 훨씬 뒤에 나타났습니다. 그보다 먼저 이름도 기록도 남기지 않은 수많은 세대가 살았습니다.

    우리가 점토판에 새겨진 왕의 이름을 읽기 전에, 땅속에 남은 작은 발자국을 먼저 들여다보는 이유입니다.

  • 돌을 쓰던 사람들이 금속을 녹이기 시작했어요

    돌로 도구를 만들던 사람들이 불 속에서 금속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단단한 돌을 조금씩 깨고 갈아서 모양을 만들던 것과는 다른 일이었습니다. 금속은 녹여서 틀에 부으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었고, 다시 녹여 새로운 물건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금속을 쓴다고 해서 돌도구가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반짝이는 금속 옆에 익숙한 돌도구도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구리에 다른 금속을 섞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이 일찍부터 사용한 금속 가운데 하나는 구리입니다. 구리는 두드려 모양을 바꿀 수 있지만, 무른 편이라 쓰임에 한계도 있었습니다.

    청동은 구리에 주석 등을 섞어 만든 금속입니다. 재료의 비율과 만드는 방법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며, 순수한 구리보다 단단한 물건을 만드는 데 유리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구리와 주석의 조합 외에도, 고대에는 비소가 섞인 구리 합금 등이 사용됐습니다. 금속 기술은 오랜 시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발전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청동 설명, 고대 서아시아 구리 기술 연구

    오늘날 박물관에서 보는 청동 유물에는 초록빛이 도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두 초록색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 주변 환경과 반응하면서 표면이 달라진 것입니다. 갓 만들어졌을 때의 금속빛을 떠올려 보면,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놀라움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불을 피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금속 도구 하나를 만들려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재료를 구하고, 충분한 열을 내고, 녹은 금속을 담을 그릇과 모양을 잡을 거푸집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거푸집은 물건의 모양을 만드는 틀입니다. 붕어빵 틀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다만 뜨거운 금속을 다루는 일은 훨씬 위험하고 까다로웠습니다. 틀을 준비하는 일부터 금속을 붓고 식히는 일까지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기술을 익힌 사람의 솜씨는 귀했을 것입니다. 남아 있는 유물은 완성된 물건이지만, 그 뒤에는 재료를 나르고 불을 돌보고 실패한 물건을 다시 만드는 수많은 작업이 숨어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도 돌칼로 곡식을 거뒀어요

    ‘청동기 시대’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청동 도구를 하나씩 들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농사 현장에서는 돌로 만든 도구가 계속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반달돌칼입니다. 반달처럼 생긴 돌에 구멍을 뚫고 끈을 달아 손에 고정한 뒤, 날로 곡식의 이삭을 잘랐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수확 도구가 돌칼이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새 재료가 등장해도 생활에 익숙하고 쓸모 있는 도구는 계속 사용했던 것입니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의 반달돌칼 설명

    사람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일은 여전히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금속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에도 밭을 돌보고, 곡식을 거두고, 저장할 그릇을 마련하는 생활은 이어졌습니다.

    금속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도 이어 주었어요

    청동을 만들 재료를 언제나 한곳에서 모두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재료가 있는 곳과 물건을 만드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사람들은 이동하거나 다른 집단과 물건을 주고받아야 했습니다.

    고대 서아시아와 주변 지역의 교류에서도 주석은 중요한 재료로 다뤄졌습니다. 작은 금속 물건 하나에 여러 지역을 오간 재료와 기술이 담길 수 있었던 셈입니다. 다만 모든 청동 유물의 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밝혀진 것은 아니며, 구체적인 이동 경로는 유물마다 따로 살펴봐야 합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청동기 시대 자료

    또 청동기 시대는 세계 곳곳에서 같은 해에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금속 기술이 전해지고 널리 쓰이는 시기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 지역의 연대를 다른 지역에 그대로 적용하면 당시의 모습을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를 떠올릴 때 반짝이는 칼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뜨거운 불 앞에서 틀을 준비하던 사람, 재료를 운반하던 사람, 돌칼로 이삭을 거두던 사람도 함께 있었습니다.

    박물관 진열장 안의 작은 유물 하나는 그런 사람들의 손을 거쳐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금속의 역사는 새로운 재료를 발견한 이야기이면서, 그 재료를 생활 속에서 다루는 법을 배워 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태그: 지구의역사, 청동기시대, 청동, 금속기술, 반달돌칼, 선사시대